지난 11월 4일 주니어 생글생글 기자들이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을 찾았다. 행주산성은 고양시의 서남쪽, 한강변에 접해 있는 덕양산에 위치한 산성이다. 1592년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충장공 권율 장군은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년) 음력 2월 12일 (양력 3월 14일) 행주산성을 공격하는 왜적을 맞아 대승을 거두었다. 바로 행주대첩이다.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행주산성은 사적 제56호로 지정됐다.
행주산성은 가족과 함께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정상에선 한강과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430년 전 벌어진 역사 속 전투,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조들의 정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혜린 문화관광해설사는 “그동안 행주산성은 통일신라 시대에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 문화 유적 발굴 조사를 통해 삼국 시대 석성(돌로 지은 성)이 발견됐다”며 “임진왜란 당시 큰 승리를 거둔 곳인 동시에 1000년 전부터 역사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by 문혜정 기자
행주치마로 끌어낸 행주대첩
취재를 위해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을 다녀왔다. 행주산성을 처음 방문해 매우 기대되고 신났다.
대첩문에 모인 우리는 권율 장군의 동상을 보러 갔다. 권율 장군은 임진왜란의 행주대첩에서 채 3000명도 되지 않는 병사를 데리고 3만 명의 왜군과 싸워야 했지만, 지형지물을 이용해 왜군을 무찔렀다. 그는 전투 중 식사하다가 멀리 보이는 3만 명의 왜군을 보고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 군사들에게 “많이 먹어 두라”고 말했다고 한다. 3만 명의 왜군이 얼마나 무서운 수였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겁 많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권율 장군은 용맹한 분 같았다.
행주산성 정상에 있는 행주대첩비도 봤다. 직접 산에 올라서 보니 지형이 높아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왜군들은 공격하면서 오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주변 지형을 이용한 우리 조상의 지혜가 엿보여 더욱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까지 권율 장군의 리더십과 백성들의 희생정신이 있었다고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 권율 장군의 용기를 떠올리다
행주대첩은 행주산성에서 약 3000명도 되지 않은 조선 군사가 3만 명의 왜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전투를 말합니다. 권율 장군은 문관이었습니다. 문관은 전쟁에 참여하는 무관과 달리, 공부하며 국정을 논의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문신들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런 조선과 달리 당시 왜는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 200년간 서로 싸웠습니다. 왜의 통일을 이룬 주인공은 도요토미 히데요 시. 그의 꿈은 중국 명나라의 황궁까지 진격하는 것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통로이자 첫 번째 진격지로 조선을 침략한 거죠.
하지만 우리 조선 사람들은 어려울 때 더 빛나는 단결력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바다에선 이순신, 육지에선 권율 장군이 왜군들의 침입을 막아 임진왜란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행주산성의 출입문인 대첩문에서부터 행주대첩비가 세워진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며 당시 전쟁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불공을 드리던 승려와 평민까지 농기구를 들고 싸웠고, 부녀자들은 부상자를 치료하거나 밥을 지어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화살이 떨어졌을 땐 치마를 자른 천에 돌을 날라 행주치마의 전설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행주대첩비에 도착했을 때 마음속에서 용기가 솟아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앞으로 나에게 위기가 찾아올 때 두려운 마음을 삼키고 이 용기를 꺼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치 권율 장군님, 그리고 함께 싸웠던 분들처럼요. 우리의 얼을 찾아서
행주산성에서 많은 활동을 했어요.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설명도 귀에 쏙쏙 들어왔고, 권율 장군에 관해서도 처음 배웠어요. 과거 행주대첩의 전투가 어땠을지 상상이 되더라고요. 우리 선조들은 나라를 지키려고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았고, 왜적으로부터 싸워 이기겠다고 다짐한 것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도 자랑스러운 역사와 나라를 지켜야 해요. 지금의 대한민국은 민족의 얼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특히 현실적인 문제는 저출산인 것 같아요.
역사를 알고 난 후 전통 무용을 배우는 시간이 가장 재미있고 행복했습니다. 예쁘게 한복도 차려입고 강강술래를 배웠어요. 청어 엮기, 손치기와 발치기 등 한국 무용을 배우니 한층 더 재미있었어요. 생각보다 훨씬 좋은 체험이었고, 이를 통해 우리의 역사에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남다른 통찰력과 리더십의 권율 장군
지난 11월 4일 주니어 생글생글 기자단으로서 가족과 함께 행주산성에 다녀왔다.
대첩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나오는 권율 장군의 동상과 조선군의 항전 모습을 새긴 동판을 보니 웅장함을 느꼈다. 2300명밖에 되지 않는 조선군이 3만 명 가까이 되는 왜군들과 싸워 승리한 전투 행주대첩이다. 조선군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대첩기념관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임진왜란 전투도를 보았다. 여러 그림 중에서도 독산성 전투도가 인상 깊었다. 수원 독산성 전투에서 조선군이 마실 물이 부족해 위기를 맞았지만, 왜군에게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려고 흰쌀을 말에 뿌려 목욕시켰다는 이야기가 그려져 있었다. 멀리서 보면 쌀이 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권율 장군의 지혜로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행주대첩비를 보기 위해 산 정상으로 향했다. 행주대첩비 아래로 펼쳐진 한강과 행주대교도 무척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충훈정에 모여 한복을 입고 한국 무용을 배우며 우리의 전통 문화 예술을 체험했다. 행주산성 역사 탐방을 끝내며 권율 장군의 지혜와 조선군의 단합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권율 장군의 통찰력과 지도력을 본받고 싶다. 행주대첩 승리 비결은?
행주대첩은 1593년 음력 2월 12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 동안 벌어진 전투입니다. 단 하루의 전투가 유명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군은 3만 명이었는데, 우리 군사는 3000명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2300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13배나 되는 왜군을 어떻게 물리쳤을까요?
네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높은 산에서 전투했어요. 산을 오르는 왜군을 향해 높은 곳에서 활을 쏘며 공격했습니다. 둘째 화살이 떨어져 없어지자 성안에 있던 여자들이 치마 폭으로 돌을 날라서 왜군에게 던졌습니다. ‘행주치마’의 유래가 된 이야기입니다.
셋째, 왜군은 조총을 쐈지만 우리는 대포를 사용했어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꼭 이겨야 한다는 조선인들의 의지였어요. 이런 이유로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게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번 주 글쓰기 주제는 ‘식당과 카페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해야 할까’ 입니다. 원래 정부는 이달부터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및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 려고 했는데, 최근 이 정책을 사실상 취소·연기했습니다. 앞으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환영하는 반면, 환경 보호를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주니어 생글 기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다양하게 보내왔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가요?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살고 싶어요!
저는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와 접시, 비닐봉지 같은 일회용 물건 사용을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일회용품을 사용하면 쓰레기가 많아지고 환경이 오염 되어서 지구가 아프고 사람들까지 병들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버려진 쓰레기를 태우면 나오는 나쁜 성분이 공기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많은 쓰레기를 버려서 쓰레기통이 가득차면 쓰레기를 자주 버려야 하니까 음식점 직원들이 힘들어집니다. 네 번째, 쓰레기를 없애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나와서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일회용품을 많이 쓰면 지구가 완전 쓰레기 행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서 좋은 환경을 만들고, 환경 오염없이 병에 안 걸리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저는 산에서 뛰어놀고 밤 따고, 계곡에서 물고기 잡고, 물수제비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습니 다. 하지만 환경이 나빠져서 그런 것을 못 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환경을 잘 지키는
법원은 법에 따라 국민의 갈등을 조정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 법적·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다.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지키는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 입법부와 함께 삼권분립의 3대 축을 이루는 곳이 바로 사법부다.
지난 10월 31일 주니어 생글 기자단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을 찾았다. 대법관들이 판결을 내리는 법정을 둘러보고 ‘정의의 여신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모의재판 체험은 실제 법정을 본떠 만든 법정 체험실에서 이뤄졌다. 재판관, 검사, 변호사, 피고인, 증인 등의 역할을 나눠 가상의 형사 사건(절도죄)을 놓고 재판을 진행했다. 법률 용어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씩씩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해냈다. 참관하던 주생 기자들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정재우 판사님과의 대화에선 사형제, 촉법소년, 판사의 업무 등에 관한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대법원 견학 프로그램을 이끈 강소정 법원행정처 실무관은 “주니어 생글 기자들이 대법원의 주요 시설을 둘러보고 평소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법관과 대화함으로써 사법부와 대법원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기회가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판사님, 촉법소년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6학년 1학기 사회 시간에 법원이 하는 일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과 뉴스를 통해 보았던 대법원을 주니어 생글생글 기자로서 방문하게 되니 설레면서도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대법원 법정도 둘러보고, 모의재판도 참관한 뒤 정재우 판사님을 만났습니다. 최근 늘어나는 미성년자 범죄와 관련해 촉법소년(형사 처벌이 불가능한 10세 이상 14세 미만)
지난 10월 25일 주니어 생글생글 기자들이 서울 세종대로에 있는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에서 정상혁 신한은행장을 만났다. 정 은행장은 올해 초 신한은 행의 행장으로 새로 취임했다. 그는 1990년 신한은행에 들어온 이래 33년 동안 은행의 각종 업무를 맡으면서 금융인으로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이날 기자단은 금융의 역사를 배우는 한편, 은행과 금융에 대해 궁금한 점을 정 은행장에게 질문했다. “AI(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된 미래의 디지털 금융은 어떻게 될까요?” “노인들을 위한 은행 서비스 제도가 무엇인가요?” “현명한 저축·투자 습관을 알려 주세요” 등 그야말로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몇몇 다른 은행에서 발생한 내부 직원들의 금융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을 묻는 기자도 있었다.
이날 바쁜 일정에도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한 정 은행장은 “향후 여러분 중 훌륭한 금융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신한은행은 돈이 필요한 기업과 개인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취약 계층을 돕는 등 ‘따뜻한 금융’을 통해 우리 사회와 국가가 더 발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by 문혜정 기자 “용돈 쓰기 전에 먼저 저축하세요”
주니어 생글 기자가 된 뒤 첫 취재라서 설레는 마음으로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님을 인터뷰하기에 앞서 먼저 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옛날에 조개·화살촉·곡식 등을 화폐로 사용한 것, 한성은행과 신한은행이 설립된 시기,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금융 상황 등 돈과 경제에 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정상혁 신한은행장님을 인터뷰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