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주니어 생글생글 기자들이 서울 세종대로에 있는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에서 정상혁 신한은행장을 만났다. 정 은행장은 올해 초 신한은 행의 행장으로 새로 취임했다. 그는 1990년 신한은행에 들어온 이래 33년 동안 은행의 각종 업무를 맡으면서 금융인으로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이날 기자단은 금융의 역사를 배우는 한편, 은행과 금융에 대해 궁금한 점을 정 은행장에게 질문했다. “AI(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된 미래의 디지털 금융은 어떻게 될까요?” “노인들을 위한 은행 서비스 제도가 무엇인가요?” “현명한 저축·투자 습관을 알려 주세요” 등 그야말로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몇몇 다른 은행에서 발생한 내부 직원들의 금융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을 묻는 기자도 있었다.
이날 바쁜 일정에도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한 정 은행장은 “향후 여러분 중 훌륭한 금융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신한은행은 돈이 필요한 기업과 개인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취약 계층을 돕는 등 ‘따뜻한 금융’을 통해 우리 사회와 국가가 더 발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by 문혜정 기자
“용돈 쓰기 전에 먼저 저축하세요”
주니어 생글 기자가 된 뒤 첫 취재라서 설레는 마음으로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님을 인터뷰하기에 앞서 먼저 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옛날에 조개·화살촉·곡식 등을 화폐로 사용한 것, 한성은행과 신한은행이 설립된 시기,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금융 상황 등 돈과 경제에 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정상혁 신한은행장님을 인터뷰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기자단 모두 거의 말을 하지 못했는데, 은행장님께서 농담도 하시고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시면서 금세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습니다.
저는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은행원이 된 이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은행장님은 강도 사건으로 금고를 지킨 일, 착오로 돈을 잘못 보냈을 때 힘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초등학생에게 추천하고 싶은, 현명하게 돈을 모으고 쓰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은행장님은 “돈을 쓰기 전에 먼저 계획을 잡아서 일정한 금액만큼 저축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돈과 경제 등 어려운 내용을 다루는 인터뷰라서 딱딱한 분위기가 될 줄 알았는데, 정상혁 은행장님께서 알기 쉽고 자세하게 답변해 주셔서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하면 누구나 저축이나 투자를 현명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하신 게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주니어 생글생글 독자들도 실천해 보면 좋겠습니다. 금융 역사를 배운 한국금융사박물관
국내 대표 금융 회사인 신한은행의 한국금융사박물관을 방문하고 은행장님을 만나 은행과 금융에 관해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물관에는 철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화폐·금융 발전의 역사가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화폐가 등장하기 전 철기 시대에는 주로 옷감이나 쌀을 통해 물물교환했다. 그러다 고려 시대부터 동국통보 등 동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조선 시대에 동전이 상용화되면서 보따리에 가벼운 물건만 챙겨 팔러 다니는 보부상도 나타났다. 오늘날 화폐는 교환 경제 매개자 역할을 한다.
개항 이후 한성은행 등 여러 은행이 생겼다. 하지만 너무 많은 외국 은행이 우리나라에 자리 잡으며 외국계 은행의 경제 침략이 계속되자, 조선은 민족 은행을 설립한다. 대한제국 시기에 옛 한국은행이 생겼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한국은행이 된다. 1980년대 본격적인 경제 개발이 시작되면서 돈을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는 금융 자율화가 이루어진 가운데 1982년 신한은행이 창립되었다.
견학을 마친 후에는 은행장님과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한 질문은 은행이 사회 기여를 하는 까닭이다. 은행장님은 “은행도 하나의 기업 시민으로서 사회에 당연히 기여해야 하고, 신한은행은 ‘세상을 이롭게 하자’라는 사훈이 있다”고 답하셨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금리가 올라간다고 해서 대출받는 사람들이 줄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출받는 사람들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금리가 올라간다고 해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니어 생글생글 독자들도 은행이 주는 편리함과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돈의 역사와 가치, 신한은행장님의 기업가 정신
주니어 생글생글 기자단으로 한국금융사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박물관에는 돈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많았고, 옛날 마을 모형까지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저도 열심히 둘러보았습니다. 그러자 보통 때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전시실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돈과 경제에 대한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옛 화폐와 은행의 역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 옥상에는 신한은행의 귀여운 마스코트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있습니다. 박물관을 방문한다면 여기서 사진 찍는 것을 추천합니다.
주니어 생글생글 기자단은 정상혁 신한은행장님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은행장님은 친절하시고 차분하셨습니다. 저는 은행장님에게 “은행장으로서 목표가 있으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은행장 님은 “은행이 세상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또 희망 있고 즐겁게 만들 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집, 공공시설 등을 짓고 싶습니다”라고 답변해 주셨습니다.
저도 나중에 통 큰 기업심(企業心)을 갖기 위해 돈을 계획성 있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중 3:3:3:1 원리로 용돈 쓰는 방법을 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용돈에서 저금 30%, 투자(주식) 30%, 쓸 돈 30%, 여유 자금 10%로 나누는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도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하길 바랍니다. 은행 직원들이 말을 키운 이야기
오늘은 신한은행장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어떤 분이실까 상상하며 서울 한국금융사박물관에 도착했다. 이 박물관은 신한은행이 우리나라의 금융을 알리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화폐의 다양한 역사를 알 수 있었다. 옛날에는 화폐가 없어서 물물교환 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원하는 것도 다르고, 양도 달랐기 때문에 물물 교환은 어려웠다. 사람들은 고민 끝에 조가비, 구슬, 뼈, 금속 등으로 화폐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양이 달라도 편하고 쉽게 거래할 수 있게 됐다.
다른 한쪽에는 은행의 역사도 나와 있었다. 조선 시대부터 은행이 있었는데 이름은 한성은행이다. 한성은행의 일화도 들었다. 어떤 남성이 타고 다니던 말을 담보로 55냥의 돈을 빌려 갔다. 그런데 돈을 갚지 않아 은행 직원이 말을 키웠다는 이야기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 신한은행장님을 만나러 갔다. 나는 은행장님께 “새로운 화폐가 나온다면 신한은행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라고 여쭤 봤다. 10만 원권과 같은 새 지폐가 나오면 보관하거나 업무를 처리할 때 편리할 것이라고 하셨다. 다만 물가가 너무 오를 수 있어 나오긴 힘들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금융도 배우고 은행장님도 뵙고 값진 경험이었다. 어린이 기자로 활동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끝으로 독자들도 금융 공부를 할 수 있는 한국금융사박물관에 가 보기를 추천한다. 과연 은행에서 무슨 일을 할까?
평소 길을 갈 때 항상 은행을 지나쳤는데, 은행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신한은행장님을 만날 기회가 왔다. 은행장님은 친절하게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그중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을 소개하겠다.
기억에 남는 질문은 어린이들에게 권하는 저축과 투자 방법을 물은 것이다. 보통 부모님으로부터 한 번쯤은 용돈을 받았을 거다. 근데 받은 돈에서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는 게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먼저 돈을 저축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이번 달에 1만 원을 저축하고, 다음 달도 1만 원, 그다음 달도 1만 원 이렇게 계획을 세워서 저축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질문은 은행장님이 은행에서 일하게 된 동기였다. 은행장이 어렸을 때 꿈은 아니었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에 직업을 고민하다가 ‘은행에서 돈이 필요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하셨다. 이번 취재는 은행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나는 은행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번 주 글쓰기 주제는 ‘식당과 카페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해야 할까’ 입니다. 원래 정부는 이달부터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및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 려고 했는데, 최근 이 정책을 사실상 취소·연기했습니다. 앞으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환영하는 반면, 환경 보호를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주니어 생글 기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다양하게 보내왔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가요?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살고 싶어요!
저는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와 접시, 비닐봉지 같은 일회용 물건 사용을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일회용품을 사용하면 쓰레기가 많아지고 환경이 오염 되어서 지구가 아프고 사람들까지 병들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버려진 쓰레기를 태우면 나오는 나쁜 성분이 공기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많은 쓰레기를 버려서 쓰레기통이 가득차면 쓰레기를 자주 버려야 하니까 음식점 직원들이 힘들어집니다. 네 번째, 쓰레기를 없애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나와서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일회용품을 많이 쓰면 지구가 완전 쓰레기 행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서 좋은 환경을 만들고, 환경 오염없이 병에 안 걸리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저는 산에서 뛰어놀고 밤 따고, 계곡에서 물고기 잡고, 물수제비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습니 다. 하지만 환경이 나빠져서 그런 것을 못 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환경을 잘 지키는
법원은 법에 따라 국민의 갈등을 조정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 법적·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다.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지키는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 입법부와 함께 삼권분립의 3대 축을 이루는 곳이 바로 사법부다.
지난 10월 31일 주니어 생글 기자단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을 찾았다. 대법관들이 판결을 내리는 법정을 둘러보고 ‘정의의 여신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모의재판 체험은 실제 법정을 본떠 만든 법정 체험실에서 이뤄졌다. 재판관, 검사, 변호사, 피고인, 증인 등의 역할을 나눠 가상의 형사 사건(절도죄)을 놓고 재판을 진행했다. 법률 용어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씩씩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해냈다. 참관하던 주생 기자들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정재우 판사님과의 대화에선 사형제, 촉법소년, 판사의 업무 등에 관한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대법원 견학 프로그램을 이끈 강소정 법원행정처 실무관은 “주니어 생글 기자들이 대법원의 주요 시설을 둘러보고 평소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법관과 대화함으로써 사법부와 대법원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기회가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판사님, 촉법소년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6학년 1학기 사회 시간에 법원이 하는 일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과 뉴스를 통해 보았던 대법원을 주니어 생글생글 기자로서 방문하게 되니 설레면서도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대법원 법정도 둘러보고, 모의재판도 참관한 뒤 정재우 판사님을 만났습니다. 최근 늘어나는 미성년자 범죄와 관련해 촉법소년(형사 처벌이 불가능한 10세 이상 14세 미만)
지난 11월 4일 주니어 생글생글 기자들이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을 찾았다. 행주산성은 고양시의 서남쪽, 한강변에 접해 있는 덕양산에 위치한 산성이다. 1592년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충장공 권율 장군은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년) 음력 2월 12일 (양력 3월 14일) 행주산성을 공격하는 왜적을 맞아 대승을 거두었다. 바로 행주대첩이다.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행주산성은 사적 제56호로 지정됐다.
행주산성은 가족과 함께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정상에선 한강과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430년 전 벌어진 역사 속 전투,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조들의 정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혜린 문화관광해설사는 “그동안 행주산성은 통일신라 시대에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 문화 유적 발굴 조사를 통해 삼국 시대 석성(돌로 지은 성)이 발견됐다”며 “임진왜란 당시 큰 승리를 거둔 곳인 동시에 1000년 전부터 역사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by 문혜정 기자 행주치마로 끌어낸 행주대첩
취재를 위해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을 다녀왔다. 행주산성을 처음 방문해 매우 기대되고 신났다.
대첩문에 모인 우리는 권율 장군의 동상을 보러 갔다. 권율 장군은 임진왜란의 행주대첩에서 채 3000명도 되지 않는 병사를 데리고 3만 명의 왜군과 싸워야 했지만, 지형지물을 이용해 왜군을 무찔렀다. 그는 전투 중 식사하다가 멀리 보이는 3만 명의 왜군을 보고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 군사들에게 “많이 먹어 두라”고 말했다고 한다. 3만 명의 왜군이 얼마나 무서운 수였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겁 많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